혜화동저녁모임_2020년 7월_유라시아 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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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송석아카데미 혜화동 저녁모임
일시 : 7월 6일(월)/13일(월) 저녁 7시 - 9시
주제 : 유라시아 견문
강연 : 이병한 | 역사학자
중화, 서구, 동구 문명의 복합 국가.
인구 1억 3천의 중화 세계의 2인자.
유라시아 연합과 환태평양 연합의 허브 국가.
20년 뒤, 이런 수식어를 가지게 될 국가는 어디일까요?
바로 작년 김정은과 트럼프가 회담을 가질 예정이었던 베트남입니다.
흔히 베트남이라고 하면 동아시아의 어느 국가 정도로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병한 선생님은 동남아와 동북아를 합친 정도로
동아시아를 이해하는 것은 납작한 해석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유라시아 지도를 펼쳐 보입니다.
1000일 동안 100개나라 1000개 도시를 다니도록 만든 새로운 사유의 지도.
이병한 교수는 유라시아 지도로 세상을 바라보면
반전(反轉)의 시대를 읽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베트남에서 박사 논문을 연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하노이에서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곳의 오페라 하우스와 국립도서관은 프랑스 장식으로 지어져있었고,
광장에는 레닌 동상이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호안키엠 호수 근처에는 베트남을 처음 세운 이태조 동상이
호치민의 동상보다 더 크게 세워져있었습니다.
이웃 나라에서는 이슬람 양식의 모스크를 시내 한복판에서 볼 수 있었지요.”
지리적, 문명적, 역사적으로도 유럽과 아시아는 가깝습니다.
복합적인 이곳을 어떻게 부를지 고민하다가
그는 유럽과 아시아를 이은 ‘유라시아’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정치적으로도 유럽과 아시아는 이미 깊이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냉전 이후 핵심 기제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입니다.
하지만 21세기에 이르러 메르켈과 마크롱의 유럽통합방위군단 구상, 브렉시트,
메르켈과 푸틴의 잦은 회동은 미국 중심의 기본 질서를 무너뜨립니다.
구미(歐美)가 멀어지고 유럽과 러시아는 재합류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유라시아에 속한 국가들은 비슷한 흐름 속에 있었습니다.
중국의 중화문명국가, 터키의 신오스만주의, 러시아의 동방정교대국, 인도의 힌두문명국가.
이들은 모두 문명을 현대적으로 복구시키는 국정철학을 내걸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2012년부터 집권하는 시진핑의 국정철학은 ‘중국몽’이에요.
과거 모택동이 내걸었던 반봉건의 구호와는 정반대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외칩니다.
인도의 모디 총리가 표방하는 것도 힌두문명 국가 만들기입니다.
“모두가 브라만처럼 경건하게 사는 사회”라는 힌두뜨와에 젊은 세대가 크게 지지하고 있지요.
러시아에서도 2000년부터 푸틴이 강한 리더십으로
동방정교의 대국을 만들어가는 데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흐름은 서구, 현대, 세속에 주도권을 내어준 근대화의 논리와 배치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구, 전통, 영성으로 복구하는 것도 아니지요.
동/서, 고/금, 성/속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서는
21세기를 움직이는 질서를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양 쪽 패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동-서, 고-금, 성-속 합작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병한 교수는 근대 이후 새로운 세계의 패러다임을 ‘지구적 근대’라고 명명했습니다.
온․오프라인에서 더욱 촘촘하게 연결된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정치를 요구합니다.
이병한 교수는 합작의 질서에 맞춰 새 시대의 새 정치가
탈세속화와 재영성화의 방향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두아라 교수와 지구적 근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의 서구적 사고로는 자연을 극복하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로서 현재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맞이한 것이고요.
두아라 교수는 신시대에는 아시아가 오랜 시간 축적해온
자아를 극복하는 전통을 회복해야 할 때라 말합니다.
인도 모디 총리는 세속적인 정치인이자 영적인 지도자로서
새 시대의 새 정치를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는 공식석상에서는 영어 연설을 삼가고, 베다 경전을 인용하여 트위터 정치를 해요.
인도의 초대 수상인 네루 총리가 영국 이념에 따라 인도를 다스린 것과 대비되지요.”
이병한 교수는 지구적 근대 시대에 맞춰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려인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고려인은 개경(開京)이 의미하는 ‘열린 도시’라는 감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말했습니다.
“개경은 이름 그대로 Open city 혹은 Hub city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도시는 성으로 막았던 폐쇄적인 시대에 개경은 열린 도시를 주창했지요.
개경의 벽란도는 당시 글로벌 허브였고, 국자감은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이었어요.
저는 한반도에서 다시 동아시아 국제대학을 만들어
유라시아 네트워크에 깊이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병한 교수는 스스로를 개벽파라고 말합니다.
개벽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사상을 근간으로 합니다.
Digital, Data, DNA의 개발이 무한히 팽창되고
인공생명과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시대.
물질개벽의 최전선에서 정신개벽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고민 끝에 이병한 교수는 2019년, 개벽학당을 창립했습니다.
“개벽학당은 개벽 사상의 근간인 동학에 뿌리를 둡니다.
동학의 핵심은 ‘경천-경인-경물’입니다.
자유-평등-우애가 인간들 사이의 관계라면 동학은 그것을 뛰어넘습니다.
경천에는 인간을 넘어선 천상에 대한 감각이 포함되고,
경물은 모든 생물을 아우릅니다.”
이병한 교수는 개벽사상을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기 위하여
지구 세대 라이프스타일 실험실, <Earth+>의 청년들과 함께
새로운 전환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포스트-휴먼 민주주의에서 지구 민주주의로,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지구사와 만물사로,
인권에서 자연권으로 나아가는
지구적 라이프 실험을 유쾌하게 해나가고 있지요.
20세기 역사는 ‘세계’가 중심이었지만, 21세기 역사는 ‘지구’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산업화 세대도, 민주화 세대도, 밀레니얼 세대도 모두 ‘지구세대’로 합류됩니다.
지구 세대의 개인은 100년 전의 왕보다 더 깊은 네트워크로
다른 존재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만인이 성인이 되어야 하는 지구적 근대에 살아가면서
나는 어떤 마음을 갈고닦아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