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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생각하는데이와 인문학교실 <쿰>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다가올 AI시대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하고, 글쓰는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3번의 모임을 갖는 동안

우리는 똑같은 질문을 수차례 던져야 했습니다.

 

 

기능적으로 완벽한 ‘인공지능 엄마’와

불완전하지만 인간적인 ‘우리 엄마’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엄마를 선택할 것인가?

 

 

누군가는 이 질문에 ‘피식’하고 웃을지도 모릅니다.

“당연히 우리 엄마지~”라고.

하지만 이 당연함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압도적인 AI에게 인간적인 삶의 권한을

모두 넘겨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현실이 되고 있고,

다가오는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응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엉뚱한 질문에 당연한 답이지만

그 답에서 AI시대를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영국 드라마 <Humans>는 인공지능 엄마가

실제 엄마의 자리를 어떻게 대체하는지 일부 보여줍니다.

인공지능 엄마는 실제 엄마와 달리 “서두르며 책을 읽어주지 않고”,

“정서적으로 불안하지 않고”, “아이들이 필요한 것을 알아서 챙겨주고”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점점 더 실제 엄마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엄마의 역할을 기능적으로 완벽하게 실행하는

AI엄마는 ‘우리 엄마’의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합니다.

하지만, 그게 엄마의 모든 역할일까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엄마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3주동안 고민했던 자신의 생각을

아이들이 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 글의 일부, 혹은 전부를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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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엄마

 

엄마로 태어난 엄마가 있다

사과하는 법을 모르고 반성하는 법을 모르는

완벽하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은 엄마가 있다

 

어쩌면 완벽은 없는 것 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 자란 나비의 아름다움보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의 가치를

더 오랫동안 기억해야 한다

 

시_박제인 

 

 

 

 

 

'가짜'와 '진짜'를 가려볼 줄 아는 힘 

 

영국드라마 ‘휴먼즈’의 AI 엄마 아만다는 우리 어머니들의 기능적 역할을 대체할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 대체가 가능하다지만 분명히 ‘우리 엄마’는 그것과 비교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지금 당장 누군가에게 AI와 어머니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어머니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먼 미래의 이야기는 다를지도 모른다. 미래에도 ‘우리 엄마’가 인공지능 엄마보다 낫다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충분히 엄마를 AI로 대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AI보다 더 나은 점은 무엇이 있을까?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능력으로 대부분 감정을 말한다. 엄마는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AI는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딥러닝’이 AI의 주요 특징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런 감정마저도 위험한 영역일 수 있다. 자전거 타기를 예로 들어 보자. 자전거를 탈 때, 우리는 처음에 페달을 밟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곧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그리고 다시 시도하지만 쓰러진다. 이런 몇 차례의 시도를 하고나면 자전거 타기의 원리를 익히고 균형잡는 법을 훈련하게 된다. 이 과정이 이른바 딥러닝이다. 기능은 학습될 수 있지만 감정은 학습되지 않는 것일까?

 

사실 우리는 감정도 학습한다. 우리는 가정에서부터 학교나 다른 기관을 통해 사회화된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교류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어떨 때 화내야 하는지 어떨 때 웃어야하는지 그리고 어떨 때 위로해야 하는지를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된다. 사회 속에서 학습되지 못한다면 우리의 감정은 1차원적인 감정에 그칠 뿐, 다른 이들과 교류되지 못할 것이다. AI 또한 이런 감정을 학습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가짜 감정’일지라도, AI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보여야 할지를 감정도 기능적으로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시대는 이른바 ‘가짜 감정’을 진짜인 것처럼 믿는다. 최근 많은 방송 매체에서 아이돌들을 발굴하고 그 과정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방송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이미지에 열광한다. 하지만 간혹 그들의 감정과 인성이 사실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되면 누구보다도 더 가혹하게 그들을 비난한다. 진짜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우리는 ‘진짜 감정’을 원하지만 ‘가짜 감정’에 쉽게 속는다. 그리고 ‘가짜 감정’을 사랑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짜 감정’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짜 감성을 사랑하는 지금 시대에, 우리는 미래의 ‘AI엄마’로부터 ‘우리 엄마’를 지켜낼 수 있을까? 미술에서 ‘저속한 예술품’, 혹은 싸구려 복제품을 뜻하는 키치라는 개념이 있다. 반 고흐의 그림 해바라기와 그 그림을 모방한 해바라기(키치)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그 둘의 차이를 눈으로는 구별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 고흐의 해바라기에 더 감동할 것이다. 왜냐하면 원조 해바라기는 고흐의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는 모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AI 엄마와 비교될 수 없다. 기능적으로 완벽하지 못할지라도 ‘우리 엄마’와 나 사이에는 고흐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불완전하고, 실수투성이이기 때문에 생겨난다. 항상 최고만 추구하고 최선의 방법만 선택하는 AI에게 이런 불완전성과 이야기를 기대할 수 없지 않을까?

 

아직까지는 불완전한 ‘우리 엄마’의 승리이다. 다만 엄마들이 승리하는 그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이다. 하지만 지금 AI와 대체되지 않는 인간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가까운 미래의 사람들은 ‘우리 엄마’ 대신 AI 엄마를 선택할 것이다. 무엇보다 AI가 도래하는 그때에도 가짜 감정을 중시하고 완벽한 사람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면 인간은 충분히 AI에게 대체될 것이다.

 

글_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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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어릴적 엄마와 나의 관계는 참혹했다.

이때의 나에게 미래에서 온 사람이

‘너의 어머니보다 더 나은 어머니를 주마’라고 속삭였다면,

정말 부끄럽지만 난 나의 대답을 확신하지 못한다.

그때 내가 원했던 어머니가 내 어머니는 아니었던 것일까?

무엇을 어머니에게 기대했기에 갈등이 끊이지 않았을까?

 

...(중략) ...

 

그날 식탁에서 나는 어머니의 20살을, 22살을, 29살을, 31살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완벽하지 않은 채로 어머니가 되었고, 불완전한 채로 살아가고 계셨다.

그 식탁 위에서 어머니의 성장과정을 함께 공유하며

우리의 비틀어진 퍼즐을 조금씩 맞추어 가는 경험은 정말 특별했다.

우리는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 둘일 뿐이었다.

만나게 된 시간이 조금 다를 뿐.

신기술의 집합체, 기능적으로 완벽한 어머니.

미안하지만 내게는 전혀 해당 없는 이야기인 듯 싶다. 

 

글_김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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