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화동저녁모임_2021년 6월_생태적 전환과 교육의 미래
2021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전환 혜화동 저녁모임
| 일시: 6월 21일(월) 저녁 7시 – 9시
| 주제: 생태적 전환과 교육의 미래
| 강연: 현벙호 | 격월간 <민들레> 발행인
2020년, 서울시에서 생태전환교육 계획안을 발표했고, ‘생태시민양성’이 교육의 중요한 목표로 떠올랐습니다.
또한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학교와 교사에 대한 역할을 묻게 되었고, 대안교육과 홈스쿨링에 대한 관심도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전환과 진보를 바라는 사람들은 궁금해 합니다.
‘생태감수성을 기르기 위해서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주면 되지 않을까?’
‘학습자 중심으로 더욱 전환해야하지 않을까?’
‘어떻게 아이들 한명 한명을 살려주는 다양화 교육을 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현병호 선생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정말 표준화 교육이 필요 없는 것일까?’
‘교사 중심에서 학습자 중심으로 옮기면 교육 문제가 해결될까?’
‘우리 아이들이 정말 세상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힘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1990년대 말, 민들레출판사에서 『학교를 넘어서』라는 책을 출판하며 대안교육을 이끌어 온 현병호 선생은 20년이 흐른 지금, 자신이 차근차근 쌓아올려 온 대안 교육의 근본을 뒤흔드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선생은 지금까지 해온 대안교육의 결과를 다음의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1989년에 아프리카에서 코끼리 밀렵이 난무하자 코끼리를 보호하기 위해 밀렵을 금지하도록 각 국에 권고한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밀렵을 엄격하게 금지한 국가에서는 코끼리 개체수가 감소했다고 합니다. 경제학자들이 분석을 했더니, 아프리카 사회는 부족 연맹체나 다름없었고 군벌이 많다는 점을 발견했어요. 군벌이 세력을 유지하려면 경쟁적으로 밀렵을 하는 구조는 필연적인 것이지요. 그런데 이 상황에서 군벌 간에 서로를 견제하는 메커니즘을 설계한 국가에서는 각자가 소유지 내의 코끼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오히려 개체수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저는 실제로 코끼리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런 사회과학이라고 봅니다. 대안 운동이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이 사회적 문제를 심리학적으로만 접근하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앞에 바위가 있고 바위를 뚫어야하는 과제가 있다면 기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회 과학과 자연 과학 공부가 그런 실력이 될 수 있겠지요.”
지금까지의 대안 교육은 코끼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는 데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코끼리를 사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지켜낼 수 있을 거라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마음만으로는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적 상황을 알고 구조를 만들어내야만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지요.
현병호 선생은 대안 교육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지금 다시 대안 교육을 되돌아 볼 시점이 되지 않았는지 묻습니다.
20년 전, 대안 교육은 근대 교육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표준 전과를 쓰고 표준어를 가르치는 표준화 교육이 근대 교육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대안 교육에서는 ‘표준화 대신 다양화’라는 주장 아래 주입식, 암기식, 강의식 교육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표준화는 부정하고 폐기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인간은 수렵채집에서 농경, 산업 사회로 넘어왔는데, 이 문명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어요. 인구가 늘어났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금 이전 사회의 형태로 돌아가자 말할 수 없어요. 표준화도 마찬가지로 수 백 만년에 걸쳐서 진행되는 큰 흐름 속에 있는 것이고, 그런 큰 방향성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문명의 전환을 묻게 됩니다. 그것은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조건 속에서 난관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지를 찾아야하는 문제 같습니다.”
그렇다면 표준화라는 어쩔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표준화 혹은 다양화. 두 가지 선택지를 갈라놓고 고민하는 우리에게 현병호 선생은 그 둘의 관계부터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다양화가 표준화를 부정하거나 표준화를 폐기하고 다양화로 가야하는 방식이 아니어야 합니다. 표준화를 딛고 다양화로 가야한다는 말입니다. 파르테논 신전의 비유를 들 수 있는데, 표준화는 건물의 토대고 다양화는 기둥이에요. 토대는 보편성이고 기둥은 개별성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개별성과 다양성을 예찬하는 것이 토대가 없어도 가능한 것처럼 착각하기 쉬운데, 사실 토대가 없으면 기둥은 설 수 없죠. 보편성이라는 토대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는 개별성이 존재할 수 없어요. 개별성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 보편성이기 때문입니다. 기둥이 아무리 그 자체로 다듬어지고 완전한 모습을 띠고 있더라도 토대와 들보가 없으면 제 기능을 할 수 없어요.”
현병호 선생은 표준화와 개별화가 서로 부정하고 상쇄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문명의 전환은 표준화와 다양화의 긴장 관계를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갈 것인가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강의 시작에 사막의 아기코끼리를 보며 현병호 선생은 말했습니다.
“사막 위의 아기코끼리의 미래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그리고 한참동안 사진을 바라보셨습니다.
선생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자신이 이끌어 온 대안교육 운동의 뿌리까지 냉철하게 바라보도록 한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 코끼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마음과 과학적 분별력이 모두 필요했습니다.
생태적 전환과 교육의 진보를 바란다면 표준화와 다양화, 사랑과 실력의 양 날개를 활짝 펼치고 계속해서 비행해야할 것 같습니다.